28기 학회장 이예린
안녕하세요. SoME 28기 학회장을 맡게 된 이예린입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저마다의 고유한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그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는 과정은 때론 험난하고 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SoME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솔루션 실험실’입니다. 저희는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적 지식과 20대 특유의 창의적인 시각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결합하여, 이전에는 없던 성공의 방정식을 함께 만들어나갑니다. 단순한 조언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행 중심의 컨설팅을 통해 소상공인 여러분의 가장 든든한 성장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SoME 28기는 날카로운 통찰을 실질적인 성장으로 연결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정형화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각 소상공인 파트너가 처한 고유한 상황과 맥락을 깊이 파고드는 것에서부터 컨설팅을 시작합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냉철한 시장 분석과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접근을 넘나들며, 잠재된 기회를 발굴하고 위협 요인을 돌파할 최적의 전략을 설계합니다. 일회성 보고서가 아닌, 사장님께서 직접 운영하며 지속할 수 있는 ‘성장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저희의 최종 목표입니다.
SoME은 살아있는 리더십 실험실이자, 가장 치열한 성장의 무대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회원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격렬하게 토론하며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어떤 교과서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저희는 학회원 한 명 한 명이 단순한 참여자를 넘어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쥔 경영 컨설턴트로서, 문제 정의부터 전략 수립, 실행, 성과 분석에 이르는 전 과정을 경험하며 미래의 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사장님의 고독한 싸움에 저희 SoME이 함께하겠습니다. 저희의 젊은 열정과 새로운 시각은 사장님의 비즈니스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뛰는 열정적인 팀이 되어드리겠습니다. SoME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가장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되실 겁니다.
SoME은 대학생 컨설턴트인 학회원들과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인 소상공인, 그 두 주체의 가치를 동시에 드러내는 조직입니다. 앞으로도 이 가치를 지켜 나갈 학회원과 소상공인인 여러분을 기다리며, SoME은 늘 진심을 담아 나아가겠습니다.
Society of Microfinance for Everyone, SoME
28기 학회장 이예린 드림
창립자 홍정우 대표
“대학생활 중 여러분들의 가슴을 가장 울컥하게 했던 일이 무엇인가요?”
대학 새내기가 된 어느 봄날, 그날도 교문 앞에서는 전경들이 출입을 막고 학생증을 검사하고,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이 된 부당함 속에서 그것이 부당한지도 모르고 귀찮다고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하필이면 제 앞에서 법대생 한명이 전경들에게 소속과 이름을 밝히라며, 등교를 방해하는 불심검문은 불법이라고 침착하고 당당하게 외치다가 진압봉으로 마구 두들겨 맞고 질질 끌려갔습니다. 그날 학교에서는 그 법대생을 석방하라는 시위에 참여할 학생을 모았고, 저는 그날 처음 데모에 참여해 경찰서까지 행진하고 목청이 떠나가라 석방을 요구하였습니다. 부당함에 맞서는 평범한 한 학생의 용기를 본 그날이 제가 소위 8학군이라는 온실 같은 세상에서 나와 처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눈뜨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스스로와 세상에 대한 고민 중에 야학동아리에 가입하여 성북동 한진아파트 산꼭대기에 있는 판자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째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성장하고 있던 그 때, 산동네 재개발에 성공한 그 아파트는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판자촌이 눈엣가시였고, 호시탐탐 철거를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미술선생님이 꿈인 5학년 민지가 막노동을 하는 홀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유일한 안식처였고, 간호사가 꿈인 3학년 새암이가 야학선생님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몰래 숨는 곳이자,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전화인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곳이 결국은 쇠파이프를 든 철거깡패들에게 부숴지고 어린 학생들도 모두 쫓겨나 졸지에 저는 학생들을 잃어버린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더 부끄러운 기억은 그 철거깡패에 맞서기 위해 나서는 동아리 선배들과 달리 저는 쇠파이프를 든 용역깡패가 무서워 슬그머니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그날의 부끄러움은 정말 오래도록 깊숙이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은행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든 어떤 날이면 그냥 퇴근 후 모든 게 철거되어 사라진, 덩그라니 남은 공중전화 박스 앞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날들을 생각하며, 함께 서서 버텨주지 못한 미안함을 삼키며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있을 나이가 된 아이들이 그때의 꿈을 이뤘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어내며 20대의 저는 절망하고 분노했습니다. 막대한 조직과 세력을 갖춘 대기업 강성노조의 시위현장에는 너나할 것 없이 힘있는 진보 정치인들이 함께하여 목소리를 높여주면서. 정당한 등교권을 보장해 달라던 한 대학생이 야만스런 공권력에 짓밟혀 끌려가도, 그 자리에서 수십년 살아온 판자촌 주민들이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나도, 왜 이런 힘없고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수가 겪는 부당함과 아픔에는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뽀족하게 날이 선 채 살았습니다. 상식은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데올로기가 기를 쓰고 억압하려는 것임을 깨닫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유학을 떠나서도 어떤 이데올로기나 구분에서 자유로운 한 젊은이의 당연한 상식으로 그저 소외된 분들과 연대하고 함께 서있어 드릴 수 있는 길들을 선택하고자 항상 용기를 냈습니다. 다시는 부끄럽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제 무도함을 깨우쳐준 스무살 어느 봄날, 교문 앞에서 벌어진 그 일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은행생활 중 용기 내 시작한 SoME학회가 어느덧 15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영업자가 550만명이나 되고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까지 따지면 국민의 30% 정도가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려가지만, 5년 내 절반이 폐업에 직면하는 현실은 여전하고, 그럼에도 이분들의 작은 업을 살려내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발로 뛰어 줄 효과적인 서비스 체계가 없는 현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SoME학회가 15년 동안 300여곳의 업장에서 아무런 대가없이 흑자전환 전략을 수립하고 실제로 그 해결책들을 발로 뛰어 실행시켰던 이야기 하나하나에 담긴 감동들을 저는 기억합니다.
앞으로 SoME학회에 첫발을 내딛는 분들께는 대학생활 중 가장 울컥하는 경험의 시간이 되시길,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가장 어려운 분들의 곁에 함께 서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세상의 기둥들이 되어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대한민국의 어려움을 겪는 모든 소상공인 분들이 무상으로 훌륭한 컨설팅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며 SoME학회가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 용기를 냈으면 합니다.
스무살 봄날의 그날을 기억하며..
2024. 6. 15
아무런 대가없는, 수많은 희생으로 SoME학회의 기초를 만들어준 BCG출신 와튼 동기 김선, 역시 BCG출신 와튼 선배 최선화, 하나은행 이정세 단장님, 김승유 회장님, 이제 하늘에서 지켜보실 아버지와, 무엇보다 정말 어려운 소상공인분들과 가족들의 삶이 담긴 컨설팅 현장에서 젊음의 용기로 헌신해주신 수많은 대학생분들께 진심으로 사랑과 존경하는 마음 전합니다.